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에는 수직 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루는 한탄강 줄기가 ‘마귀할멈이 지팡이 끌고 간 자리’라고 하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이 무시무시하게 큰 마귀할멈은 인류의 첫 어머니이자 세상을 창조한 여신 ‘마고’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죠.
소설 〈마고〉(한정현 지음, 2022년, 현대문학)에는 “마고는 세상을 창조한 여성신이지만 조선과 일제를 지나면서 남성적 시각으로 해석, 사람을 해치는 마귀할멈으로 전락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창세신화 마고가 참 낯설기도 합니다. 한국인 대부분 서양의 아담과 이브 창세신화나 그리스‧로마신화의 창세신화는 익숙한데 막상 우리 창세신화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알고 가면 어떨까요?
우리 창세신화 속 마고는 생명의 근원, 지구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가이아와 비견되기도 하지요. 훗날 인간이 태어나도록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머니로 이어졌습니다.
마고 창세신화를 제대로 알면 우리가 왜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 정신을 갖게 되었는지, 널리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는지 머리가 끄덕여질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세대인 아이들도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흥미진진하게 관심을 가졌으면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고 창세신화는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옛 역사를 비롯해 각 분야 지식을 집대성한 《징심록》 상‧중‧하 3교 15지 중 〈부도지〉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도지는 한민족의 시원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담고 있는데 일반서점에서 찾을 수 있고, 박제상은 역사서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니 확인하면 됩니다.
먼저 1편에서는 〈부도지〉에 실린 마고이야기의 내용을 전합니다. 사실 심오한 철학이 담긴 이야기인데 ‘K스피릿의 전당’ 국학원의 전시관에서 영상으로 전하는 마고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인류의 시원 마고 어머니
햇빛이 따스하게 비칠 뿐 눈에 보이는 물체는 없었다. 여기 우주의 음과 양이 만나 완전한 생명체가 탄생하니, 이것이 바로 인류의 시원, 마고 어머니이다.
지구 어머니 마고가 다시 우주의 음양으로 자손을 낳았다. 이들의 이름은 궁희와 소희였다. 마고 어머니가 우주의 조화로운 법칙과 음율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니 이때 인류 최초의 율려가 시작되었다.
마고 어머니는 율려에 이어 땅과 바다와 불을 지구 위로 내려 놓으셨다. 산천이 아름답고, 짐승과 새들이 노니는 아름다운 지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고 “수많은 별들 중에 지구는 우주 속 한 알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 율려가 부활하면서 천지가 창조되고, 중심의 거대한 기운 덩어리가 폭발하여 무수한 별들이 생겨나고 바다와 육지가 이루어졌다. 따뜻한 기운이 땅 속 깊은 곳까지 감싸 햇빛과 열로 따뜻해지니 온갖 생명체가 번성하게 되리라“ (삼일신고 中)
궁희와 소희도 마고처럼 우주의 음양으로 네 명의 아들과 네명의 딸을 낳았다. 이들이 바로 황궁씨, 백소씨, 천궁씨, 흑소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마고성의 지유(地乳, 땅에서 나는 젖)를 먹여 자손을 키웠다.
이어 네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들이 마고 어머니의 명으로 갈빗대를 열어 또 다른 자손을 출산하게 되고. 이들이 바로 최초로 지상에 나타난 인간의 시조였다.
이때부터 남녀가 만나 서로 결혼을 하고, 자손을 늘려 3000여 명 사람들이 마고성 안에 살게 되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순수했으며, 하늘과 맞닿은 기(氣)적인 존재 그 자체였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소리내지 않아도 듣고 말할 수 있었고, 항상 하늘의 율려음을 들어 조화의 이치를 아는 하늘의 자손이자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소씨가 여러사람과 이들의 유일한 에너지인 지유를 마시러 유천에 갔다. 하지만 마고성의 사람이 늘어 사람에 비해 지유샘이 작으니, 지소씨는 여러 사람에게 차례를 양보하고, 자신은 지유를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다. 지소씨에게는 이런 일이 다섯 번이나 있었다.
배가 고픈 지소씨는 언덕위에서 쓰러져 무심코 그곳의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포도열매 몇 알은 그 단맛이 너무 강하고 유혹적이어서 지소씨의 오감을 살아나게 하는 대신 천상의 조화를 잊게 하였다.
지소는 “이 어찌 알릴 수 없겠는가! 넓고도 크구나, 이것이 바로 포도의 힘이던가?“라고 외쳤다.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포도를 맛보니 과연 그 유혹적인 맛이 지소씨의 감탄과 같았다. 여러 사람이 그 자리에서 포도를 맛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도의 강한 맛으로 인해 오감이 살아난 마고성의 몇몇 사람들은 이가 생기고, 입안에는 타액이 생겨났다. 피와 살이 탁해지고 마음이 어지러워 마침내 하늘의 법과 조화의 율려를 잊어버리니, 더 이상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들이 포도를 처음 맛보고 알린 지소씨를 원망하자, 지소씨는 부끄러워하며 무리를 이끌고 성을 나가 숨어버렸다. 포도열매를 먹은 사람들과 이를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 모두가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다.
마고성의 어른인 황궁씨는 어린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며 한탄했다. “너희의 미혹함이 커서 본성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이 성을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스스로 깨달아 천성을 되찾게 되면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어른이었던 황궁씨는 백모를 묶어 마고 어머니 앞에 사죄했다. “저에게 모든 잘못이 있으니 저를 탓하시옵소서. 제가 무리들과 천성을 되찾아 다시 돌아오겠나이다. 맹세하오니, 저의 복본의 맹세를 들어주소서.“
황궁씨는 마고 어머니 앞에 깨달음으로 다시 마고성으로 돌아오겠다는 복본의 맹세를 했다.
”오감이 살아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오미의 재앙이 거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더더욱 커지고 있음이다. 우리가 마고성을 지켜내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완전한 모습으로 보전해야만 한다. 이제 마고성의 어른인 나, 황궁과 백소씨, 청궁씨, 흑소씨는 사방으로 흩어져 살아야 하니 어디에 가더라도 복본의 맹세를 잊으면 안된다“
황궁씨가 칡을 캐어 식량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사방으로 나뉘어 살 것을 명하였다. 청궁씨는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운해주로, 백소씨는 서쪽의 월식주로, 흑소씨는 남쪽의 성생주로 가고, 황궁씨는 가장 춥고 험한 북쪽의 천산주로 갔다. 복본의 맹세를 한 황궁씨가 스스로 약속을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천산주에 도착한 황궁씨가 복본의 맹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무리에게 천지의 도를 닦아 실천하는 일을 도왔다. 황궁씨의 뜻은 아들 삼형제에게 전해졌다. 황궁씨의 장자인 유인씨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본성을 찾고, 우주의 근본이 하나임을 밝히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다.
아들 삼형제와 무리에게 복본의 맹세를 분명히 전하고, 장자인 유인씨에게 천부인을 물려준 황궁씨는 천산으로 들어가 율려를 잇는 돌이 되었다. 이로써 황궁씨는 인간세상에 영원한 스승으로 그 책임을 다하게 된다.
황궁씨를 이은 장자 유인씨는 퇴화된 사람들의 의식을 회복시켜주고, 불을 지펴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이들이 천손의 맥을 이어받은 유인씨를 스승으로 받들어 따랐다.
유인씨가 천 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에게 천손의 징표인 천부를 전하고 산으로 들어가니 황궁씨를 이었던 유인씨 역시 복본의 맹세와 약속을 다하였다.
한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간세상을 밝게 비추니, 햇빛이 고루 비치고, 사람들의 모습도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아지고 있었다. 이는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가 하늘의 도를 닦아 복본의 맹세를 다한 덕이었다.
한인씨는 천손의 법을 잇고, 뜻을 지켜나갔다. 그는 늘 중심이 되는 자리에서 없는 듯 있으면서 뭇사람을 위한 빛이 되었고, 마고성의 천인같은 삶을 살았다. 마고성 복본의 맹세를 잊지 않은 한인씨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되는 근본을 깨우쳤다. 그는 밝음을 일러 한이라 했고, 사람들은 그를 일러 안파견, 혹은 거발한이라 했다.
한인이 다스렸던 한국은 모두 열 두 나라를 이루었는데, 한인의 아홉형제가 제족을 나누어 천손의 가르침을 폈다. 이들은 깨달음의 천부경을 가르치고, 인간의 도리를 지켜 마고성 복본의 맹세를 지키는 천손으로 성장했다.
평화로운 한국에는 다섯가지 가르침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시오훈이다.
첫째, 성실과 믿음으로 거짓이 없으며
둘째, 공경과 근면으로 게으르지 않고
셋째, 효도하고 순종하여 거스르지 않으며
넷째, 염치와 의리가 있어 음란치 않을 것,
다섯째, 겸손하고 화목하여 다투지 않을 것, 이었다.
한인은 천산에 살면서 천부의 법으로 사람들을 일깨웠다. 대를 이은 마고성 복본의 맹세를 지켜 천손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었고, 이들은 모두 7대에 거쳐 3,301년을 누렸다.
지구어머니 마고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다시 황궁씨를 시작으로 유인씨, 한인씨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맥을 이었다.
천손 한민족의 계보는 18대 한웅과 47대 단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바로 생명과 우주의 조화를 하나로 관통하는 인류의 시원이자, 한민족의 뿌리가 된다.
끝
다음 편에서는 마고 창세신화가 간직한 놀라운 정신유산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딘가 닮은 듯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서양의 창세신화와도 견주어 보고자 합니다.
강나리 기자 heonjukk@naver.com
* 기사 원문
https://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76450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 연방법원이 창조론(지적설계)에 대해 내린 놀라운 판결 (2005년 도버 재판) [북툰 과학다큐] (2) | 2023.10.31 |
---|---|
주요 종교단체 홈페이지 링크 (0) | 2023.09.13 |
유럽의 고민, 남아도는 교회를 어찌할꼬? 유럽 교회의 쇠퇴 원인과 현상 (2) | 2023.08.28 |
[도서] 100문 100답 - 불교입문편 (대원정사 편집부 엮음) (0) | 2023.07.04 |
Prajnaparamita Hrdaya Sutra (반야심경) - 강혜원 (산스크리트어 버전) (0) | 2023.06.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