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외교관 'KOREA' 사수 대작전
▶ 북한의 88 서울올림픽 개최 방해 공작 전말
▶ 남북 UN 동시가입에 얽힌 비사
▶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수교
▶ 탈 냉전시대에 무너지기 시작하나 동구권 공산국가들과의 수교 및 서독과 동독의 통일이 남북관계에 끼치는 영향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둘러싼 남북 외교관들의 외교 전쟁
[석문사상 (증보 2판)]
403 ~ 405쪽 발췌.
1. 동방문화의 개막 : 1988서울올림픽과 2008베이징올림픽
2008년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얼마 후, 한 신문에 '8월 8일은 역사적 전환점인가' 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신문에서 언급된 8월 8일은 러시아가 그루지야(조지아)를 침공하고 중국 베이징에서는 올림픽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린 날이었다. 기고문을 쓴 국제관계 전문가는 '이제 미국의 시대가 가고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가 성급한 판단이라고 에둘렀다.
도의 가치관과 관점에서 봤을 때, 2008년 8월 8일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은 단순히 지구촌의 강대국 질서가 바뀌는 정도를 넘어 인류 대전환이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때까지의 역사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며 그 중심은 아시아라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날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통합적 시각으로 보면, 베이징올림픽 개최는 아시아의 시대가 유형적으로 가시화되는 양(陽l근본을 통해 이루어진 외막)적인 개막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20년 전인 1988년에 이미 서양의 시운이 동양으로 넘어오는 전환점이 있었다. 그것은 무형의 음(陰l근본)적인 개막에 해당하는 서울올림픽이다. 음양의 이치와 원리에 따라 세상의 흐름과 형국이 만들어지듯, 한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이 19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예고되었으며 2008베이징올림픽을 기해 그 변화가 현실적·구체적·실질적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문명의 흐름이 서에서 동으로 회귀하는 근원적 시작점은 1988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국제적 스프츠행사이자 동시에 한국에서 후천이 열렸음을 알리는 상징성을 가진다. 서울올림픽은 제24회 올림픽으로서 역대 최다 선수단이 참가하여 '최상의 화합' 을 구현해 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이 반쪽자리 올림픽으로 치러진 12년 만에 동구와 서구 양 진영의 선수단이 모두 참가하여 갈등과 불화를 해소시키고 화합과 세계평화의 기틀을 다졌던 행사다. (각주 84)
* 각주 84
서울올림픽은 전 세계 160개국에서 13,304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올림픽 사상 최대 대회규모를 기록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이 거부하고, 이에 대한 항의로 1984년 LA올림픽은 동구 진영이 거부함에 따라, 12년 만에 서구와 동구 진영이 모두 참여하게 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전 세계인의 축제로 치러졌다.
'통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천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0) | 2023.08.23 |
---|---|
[통일부] 이산가족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 (8) | 2023.03.28 |
평양 사람이 추천하는 평양의 10대 음식점 (2) | 2022.11.29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0) | 2022.09.28 |
북한의 지역별 음식을 알아보자! (1) | 2022.08.25 |
댓글